백열광이 살갗에 스며든다. 불안한 숨이 턱 아래로 샜다. 막히지 않은 귀에는, 먼 곳에서부터 구둣굽이 지면에 부딪히는 마찰음이 들린다. 상연의 눈은 감겼고 입은 막혔으며 양손과 발은 의자와 일체一體가 되어 뻣뻣하게 묶였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을 터, 이런 일이 왜 자신에게 닥쳤는지 알 수 없다. 발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두피 위에서는 이미...
말발굽 소리가 힘차게 이어진다. 길이 아닌 곳으로 발을 들이니 온통 가로막는 것 투성이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는 듯, 선두로 달리는 이는 소맷귀로 내칠 뿐이다. 쪽빛 도포자락이 휘날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덤불을 헤치고 나아간다. 그 뒤를 또 하나의 말이 빠르게 좇는다. 도포자락 끄트머리 사라지기 무섭게 그 뒤를 묵묵히 따르는 자는, 운검雲劍 무휼이었다. ...
자시子時가 가까웠음에도 궐내는 퍽 요란했다. 상궁부터 나인까지 줄지어 중궁전 뜰을 바삐 오간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 전각 안, 꼿꼿이 좌정한 이와 다르지 않다. 말간 얼굴빛에 연붉은 기가 돌고 속눈썹 미세하게 진동하는 눈의 시선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번번이 무너진다. 또한 붉게 단장한 입술에서는 뜨거이 긴 숨이 내어진다. 혼사를 치른 이후, ...
*언제나 겨울님의 커미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급한 호출이라길래 걸음을 서둘렀다. 서에 도착하고보니 상황이 몹시 엉망이었다. 경찰끼리 모여서 누구 라인이네, 직급이 뭐네 하며 드잡이를 하는 모양이다. 어느 팀이길래 저렇게 유치한 말썽을 피울까.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기에 빨리 지나치고 싶어 더욱 발을 재촉하는 도중이었다. "야! 내가 승진만 안 떨어졌어도 니...
"어쩌자고 그런 당치도 않는 청에 응하신 겁니까!" 허연 낯이 금새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답답한 듯 소맷자락까지 펄럭이며 제 심경 털어놓기를, 저는 형님이 그렇게 가볍게 다뤄지는 것이 싫다고 한다. 열 째의 탄신誕辰 잔치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면구面具 안에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을 숨겨놓았냐며, 다들 하나같이 소의 맨 낯짝을 보고싶어 안달들이 난 표정이었다....
억센 손아귀가 오른팔을 붙들고 놓질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오른팔이 잡혀 끌려가는 이는 고려의 4황자 소. 그리고 그 팔을 잡아 끄는 이는 다름아닌 그의 동복형제, 3황자 요였다. 4황자 소. 친교親交를 위한 목적으로 과거, 신주로 보내졌던 황자요, 지금은 고려 황가에서조차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이다. 삼한을 통일시켜 고려를 건국한 황제 왕 건, 그리고...
칼부림이 일었다는 전언傳言에 충주원 황후 유씨는 급히 침소에서 몸을 일으켰다. 칼부림이 난 장소가 어딘가 하면, 14번째 황자의 침실이라는 전언이다. "정이는! 정이는 어찌 되었느냐!" 곁에 선 몸종이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해 직접 버선발로 뛰쳐나가기에 이르나, 곧 얼마 가지 못해 바닥에 주저앉는 꼴이다. 황후는 눈으로 부옇게 물들어가는 허공을 좇다가 졸도...
피로 난자한 방에 오르간 소리가 울린다.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도 한동안 처참한 광경에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한다. 등줄기에 서늘함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뒤이어 방 안으로 들어 온 자가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제일 화려하게 해달라고는 했는데… 파티를 다 벌여놨네." 노래 선곡은 맘에 들어요? 성스럽잖아. 뇌까리고는 다시 웃는다. 양손 바지주머니 깊숙이 찔러...
*키위님 리퀘로 작성된 글입니다.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새로 온 팀장의 성격이 좀 사납다는 소문이 돈 터라, 처음 떨어진 이 집합 명령에 팀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소집된 팀원들 앞에 검은 발마칸을 걸친 키가 큰 남성이 다가왔다. 포마드로 반듯하게 넘긴 머릿칼은 흘러내리는 일이 없어 보였고 러시아제 오드 뚜 왈렛 향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눈...
주어진 일은 간단했다. 보통 집안 살림이라 부르는 것이 상연이 맡은 일이었다. 게다가 주방은 요리사 추씨가 전담하니 김씨는 상연이 집안 청소에, 빨래를 담당하면 된다고 했다. 일단 오늘은 첫날이니 일은 내일부터 해도 좋다며, 저택을 둘러볼 것을 권한다. 가이드는 없으니까 괜히 길 잊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웃음을 흘린다. 아무리 그래도 집 안에서 길을 잃기...
다시금 눈을 뜬 공간은 전혀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다. 딱딱한 하얀 시트 위, 가지런한 자세로 잠든 모양이었다. 순간 경계심이 번쩍하고 드는 바람에 몸을 일으키다 말고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아따 참. 조심성이 없는 건지, 둔한 건지……." 방 안에 사람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기에 바닥 짚고 일어나다가도 번쩍 놀란다. 습기를 먹었다 마르기를 셀 ...
연성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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